2007년 09월 04일
D-War : 김규항의 진중권 비판 문제 있다.
(물론 이 글의 진짜 목적은 김규항의 글을 계기로 취향과 비평의 문제에 대해 개똥철학적으로 함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자칭 'B급 좌파'라는 김규항이 <디 워> 소동과 관련해서 진중권을 의식해서 쓴 것이 분명한 <타인의 취향>을 읽어보면, 그는 오히려 교과서적인 말이나 되뇌는 '범생이 좌파'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우선 다음과 같은 김규항의 말을 들어보자.
"<디워> 문제가 간단치 않은 건 비슷하게 언급되는 다른 사건들(이를테면 황우석 사건)과는 달리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엔 맞다 틀리다, 혹은 옳다 그르다라는 게 없다. 취향이 있을 뿐이다. 예술이란 나에겐 천상의 아름다움인 게 다른 사람에겐 하품만 나오는 것일 수도, 나에겐 쓰레기인 게 어떤 사람에겐 삶의 위로일 수 있는 것이다. 만명에겐 만개의 취향이 있다. 천박한 취향은 고전음악을 듣는 사람도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도 아닌, 고전음악을 들으며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있다."
【김규항의 글 전문 : <타인의 취향>(원래 한겨레21에 실림)
1. 김규항의 혼동
이에 대한 무정유의 촌평은 이렇다 : '김규항의 취향 운운은 한마디로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왜 빗나간 것인가?
취향의 문제와 비평의 문제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규항의 말대로 라면, 어떤 예술작품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대한 경멸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비평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그래도 기어이 비평이란 것을 꼭 하고 싶다면 좋은 말만 해야 한다. 최소한 나쁘게 말하는 것, 혹평은 (타인의 취향에 대한 경멸이 되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 아무리 자신의 비평적 관점과 기준에서 문제가 많은 형편없는 작품일지라도.......
황당하다. 그렇다면, 예전에 음쩜셋이 <태극기 휘날리며>의 가족주의적 보수성 등등을 비판하는 비평을 썼던 것은 그 영화를 보고 재미있어 하거나 감동 받은 사람들의 취향을 경멸하는 행위가 되는가? 그렇다면, 그런 비평을 써서는 안 되는 것인가? 설마, 비평이란 게 아예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테고..
물론 나도 <씨네21>의 '20자평'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품평하기 식 비평, 전문가다운 안목으로 진품 명품 골라내듯 하는, 감정가 매기듯 하는(별 몇 개~) 그런 비평에 대해선 역겨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선 이 글에 달린 *ps2를 볼 것.)
2. 간격
이송희일 진중권 등 소위 평론가들이 심형래 감독과 <디 워>를 좀 심하게 비판한 것이 곧 그 영화를 본 일반 관객들의 취향을 경멸하는 행위였을까? 하긴, "<디 워>는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영화"(진중권) 라고 말할 정도라면, 그런 영화를 보는 것을 경멸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 워>를 비판(혹평)하는 것'과 '<디 워>를 보는 사람들의 취향을 경멸하는 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둘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보지 못하고 즉각적으로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비약이다.
그렇지 않은가? <디 워>를 비판하지만, <디 워>를 보는 사람들의 취향에 대해선, 최소한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인정해줄 수 있다. 사실, '쓰레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가령, 마릴린 몬로의 조작된 이미지를 팔아먹는 영화를 비판하면서도 그런 몬로의 매력에 끌려 그 형편없는 영화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취향에 따른 호불호(好不好)와 비평은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영화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보는 취향을 경멸하는 것' 사이의 간격을 봐야 한다. (더구나, 좀 빗나간 얘기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는 행위는 취향 이상의 것이다. 듣자하니 내 취향에 맞는 영화 같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하니까, 요즘 화제니까.. 기타 등등의 이유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진중권이 백분토론에서 '애국 코드'니 '민족주의 코드'니 했던 것도 <디 워>를 본 일반 관객들의 취향에 대한 게 아니었다. <디 워>를 옹호하는 네티즌들의 논리에 대한 것, 즉 어디까지나 평론가들의 혹평에 반발한 네티즌들이 <디 워>를 옹호하는 논리를 겨냥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진중권이 나름대로 조사해보니 평론가들에 반발하는 네티즌들은 그러한 코드(논리, 이유)를 동원해서 <디 워>를 옹호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네티즌들의 항변은 취향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3. 취향에서 비평으로
(이제부터는 무정유 지조때로 개똥철학~)
비평에는 논거(論據)가 요구된다. 논의의, 논변의, 논설의 근거가 필요하다. 물론 비평이 아무리 그럴듯한 나름의 논거를 제시한다고 해서 주관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비평이란 것은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그러나 그 주관적인 것에 나름의 논거를 제시하려 한다. 그러한 논거가 적합한가,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적합하지 않거나 설득력이 없거나 뭔가 모자란 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다른 논거를 끌어다 비판하면 된다.
이러한 비평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호불호의 문제, 재미의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관계가 없다(비평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자신의 호불호나 이해관계를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사실 걍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왜 재미있는데?" 라는 물음에 "모 걍 내 취향이니까" 라고 대답해도 된다.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 묻게 된다. 왜 재미있을까? 왜 감동적일까?...... 특히, 가령 친구나 연인과 내가 맛본 재미와 감동을 나누고 싶은데, 하지만 생각이 다를 때, 그럴 때 묻게 된다. '나는 재미있는데, 왜 쟤는 재미없다고 할까?'
바로 이럴 때 우리는 비평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는 "걍 재미있어서..." "모 내 취향이라서"와 같은 대답으론 안 된다. 함께 같이 놀 수 있는 지반(ground)을 닦아주는 논거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자기의식에 도달한 취향, 자기 근거를 갖춘 취향이 말하자면 비평을 쓰게 하는 것이다.
4. 이상적 관객으로서의 평론가
가끔 개개인의 취향을 신성시하듯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이 든다. 김규항의 교과서적인 말처럼 과연 타인의 취향은 전적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일까? 무조건? 절대적으로? 글쎄다. 김규항은 만 명에게 만 개의 취향이 있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취향이란 사회적 통념이나 유행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한때 개성이라며 너나 없이 머리를 물들이고 청바지를 찢어 입었던 것, 요즘 '조막만한' 얼굴을 좋아하는 미적 취향 같은 것은 '만 명에게 만 개의 취향이 있다'는 말과 거리가 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취향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고 왈가왈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취향이 다를 때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고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어쨌건 관객이 봐주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 책은 책이 아니듯. 그렇다. 그것들은 독자를 위해 쓰여지는 것이고 관객들을 위해 제작되는 것이다. 애초부터 독자, 관객은 잠재적인 평론가였다. 그리고 일반 독자, 일반 관객으로서의 대중은 언제나 조야한 평론가였다. 왜 조야한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논거보다는 대개 개인 취향이나 호불호에 따른 평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독자로서, 관객으로서 자기의식에 도달할 때, 그리하여 자기 근거를 갖춘 비평을 쓰기 시작할 때 평론가는 탄생한다. 생산자로서의 소비자, 소비자로서의 생산자, 이러한 평론가야말로 독자 중의 독자, 관객 중의 관객이고, 이상적인 독자, 이상적인 관객일 것이다.
더구나 인터넷을 비롯한 이 쌍방향 매체의 시대에 도대체 '평론가' vs '일반 독자/관객'의 분리와 대립만큼 촌스러운 것도 없다.
無情遊.
*ps1 : 독일어로 '근거'는 'Grund'이다. 그렇다면 'zur-Grund-gehen'(to-ground-go)은 '근거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뜻이 되어야 할 텐데, 예상과 달리 'zurgrundegehen'라는 단어는 '분해되다' '붕괴되다' 라는 뜻이다. 어떤 것의 근거에 도달할 때, 그것은 분해되고 붕괴된다. 혹은, 진정한 분해나 붕괴는 바로 그러한 근거 위에서만 가능하다.
논거(논의/논변/논설의 근거)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거/근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화시키는 것(함께 나누려는 것)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제시된 논변의 주관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논거/근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상대가 나의 주장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내 글의 배꼽을 공개하는 것이다.
*ps2 : 내가 볼 때 뛰어난 비평은 일종의 '변주'와 같다. 비평하는 작품을 테마로 삼아서 펼쳐나가는 차이와 반복의 예술(art).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생산하는 것, 창조다운 창조로서의 비평. 예라기보다는 비유에 가까운 것을 들어보면, 베토벤의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등.
(철학의 경우는 알튀세 식의 '독해'가 이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선 말하지 않은 것, 미처 말하지 못한 것, 혹은 생략된 것을 끄집어내거나, 사소하게 보이는 것, 주변적인 것,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붙잡고, 강세를 부여하며, 전면에 드러낸다.)
그 다음 '부록'으로서의 비평이나 '품평'으로서의 비평 등이 있다.
먼저, 데리다를 약간 변형시켜 말해보면, 부록이란 몸통에 덧붙여진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보충해주고, 새로운 의미를 덧붙여준다. 부록은 잉여이면서 어쩌면 없으면 안 될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의 비평이란 작품의 결함을 해석적으로 메워주고,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고,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작품이 최고라느니 쓰레기라느니 품평하고 재단하고 감정가("별 몇 개~")를 매기는 식의 비평이 있다. <씨네21> 같은 잡지에 제법 글깨나 쓰면서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안목을 과시하고픈 일부 평론가들이 종종 구사하는 어휘가 '최고' '걸작' '졸작' '쓰레기' 등등이라는 것은 시사적이다. 그런 품평을 무시할 것까진 없지만(반대로 평론가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도 당근 없고), 가끔 단정적인 말투가 역겹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ps3 : 물론,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은 이제 그 자체로 산업이기도 하고 정치이기도 하며 기타등등이기도 하므로, 텍스트 비평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볼 때 진중권의 (어쩌면 한계이기도 한) 장점은 비판의 초점을 좁히고 오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디 워>가 텍스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애국 코드'니 뭐니 하는 것도 그러한 텍스트적 비판의 부산물일 뿐이다.
<디 워>가 (아무리 예술영화 아닌 대중영화라 할지라도) 대중영화로서 갖춰야할 스토리상의 최저 수준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비평적 발언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므로. 즉, 진중권의 텍스트적 비판은 한계는 있지만 오류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진중권이 <디 워>의 CG 기술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산업적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백분토론 말미에 잠깐 영구아트무비 CG 기술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헐리우드에서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유보적 전망을 잠깐 얘기하기도 했고.
설령 그러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해도 말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좀 빗나간 것이다.
# by | 2007/09/04 10:22 | 영화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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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예술문제에 있어서 " 제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로 모든 '취향'은 존중받아야 마
땅한건지 궁금합니다. 이번건은 김규항의 헛발질이 분명해보이지만요..
예전에 진보누리에서 봤던 아흐리만군(이라고 부르기에는 이제 그도 나이가..)의 블로그에
열띤 댓글들이 많더군요.. 항상 아흐리만의 글이 어떤 사건에 있어서 텍스트분석에 충실하
다는것은 알지만 그렇게까지 김규항을'까댈'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좀 오바스럽더군
요. 아무튼 디워 논쟁이 이렇게 번질줄은 몰랐습니다.^^
모든 취향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애매모호하긴 하지만요. 제 생각으로는 그저 타인의 취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말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자..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반대로, 내 취향이니까~ 라고 말하는 것만큼 성의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것은 굳이 김규항을 비판하거나 진중권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취향이라는 것에 대해(덩달아 비평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함 생각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도 함 제대로 읽어볼 걸 그랬나..
아흐리만의 글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김규항에 대해서 뭔 글을 쓴 모양이죠? 하지만 구찮아서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네요.
김규항의 글들은 몇 번 읽어보았는데, 최소한 저로서는 별로 성에 차지 않더군요. 뭘 말하려는지는 알겠지만, 김규항의 글들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아흐리만의 텍스트 분석이라도 읽으면 최소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요. (이번 김규항의 글은 정말 평범하다 못해 한심합니다. 물론 헛발질이구요.)
디워 논쟁.. 지나고 나면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이제껏 김규항의 글을 변론하는 입장이었습니다만, 김규항씨 글에 구멍이 넘 많아서 ㅎㅎㅎ
그 (아흐리만님과의)토론에선 김규항의 글 속 평론가가 진중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라는 전제로 했습니다. 선빵론은, 평론가에 대한 대중은 반감이 이번 디워로 폭발한 것이다.라고 본 거죠. 근데 여기서 문제는 과연 디워파동의 근본적 촉발제가 평론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맞냐라는 건데, 이건 좀 아니거든요^^ 빵구 뻥~
김규항의 글에서 평론가의 지칭 대상이 진중권일 경우입니다. 이 부분은 100분토론을 얘기하는 게 됩니다. 진중권은 백토에서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무식한 놈들을 가르치듯' 말했습니다. 이게 김규항 글에서 인텔리의 부정적 면이죠. 진중권의 의도야 어떻든, 많은 대중들이(실제 디빠나 개티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쾌감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제 주위에도 그런 분들 있으니까요. 근데 문제는 이게 '선빵'이냐는 겁니다. 진중권은 선빵 맞은 사람들 보고 꼭지 돌아서 나온 것이거든요. 빵구 뻥~
물론 선빵 맞은 '이송희일'같은 사람들을 변호하러 나온 게 아니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진중권은 이런 소란스런 이슈에 얹혀 이름을 날리고, 그런 것을 통해 현실적 이익(부)을 챙기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고 해도 김규항의 글에서 선빵이 해명되진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취향"입니다.
우선 취향에 대한 김규항의 말(글 시작 부분)은 '참'이 맞습니다. 문제는, 김규항이 '평론이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마지막엔 분명히 '딸의 영화 평'을 얘기합니다. 이걸 변호하자면, 영화에 대한 주관적(취향에 근거한) 평은 존중받아야 할 취향이고, 평론가의 평론 텍스트는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비평이란 텍스트는 영화라는 텍스트를 분석하는 일종의 학문적 고찰입니다. 취향으로 감상을 적는 에세이가 아니죠.
여기서 문제가 됩니다. 평론가가 생산해낸 비평 텍스트가 주관적 취향에 치우쳤다면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평론가에 해당하는 지식인이, 평론 텍스트를 쓰는 게 아닌, 그냥
자신의 주관적 평을 발언한다면 그건 존중받아야 할 취향입니다.
김규향의 글이 '평론가들'이라고 복수형을 썼으니 진중권만 겨냥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상 진중권을 겨냥한 것이겠죠. 김규항의 저 글에 "어떤 사람들 말마따나 <디워>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영화'일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진중권이 백분토론에서 했던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마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영화'였겠지요.)
선빵이니 후빵이니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는 집단 다구리 같은 것이겠지요. 진중권이 누구를 변호하고 말고 하는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고요. 진중권이 떡밥을 던져서 화제의 인물이 되고, 그래서 이름값을 올리고 현실적 이익을 챙긴다 해도 그 자체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식의 '분석'에 걍 웃고 맙니다.)
문제는 오직 진중권의 말이 참인가 거짓인가, 옳은가 틀린가.. 하는 것입니다. 혹은, 일리가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리가 없다 해도, 즉, 진중권의 발언이 내용상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고 다만 그 말의 내용에 대해서 비판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디아 님!
김규항의 글 시작 부분은, 농담 겸 진담을 말하자면, '참'이 아닙니다. 참/거짓(true/false)은 사실판단의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지요. 김규항의 저런 말은 사실판단이 아니라 가치판단이므로 옳으냐/그르냐(right/wrong)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취향에 대한 김규항의 말이 옳은가 그른가.. 저는 그닥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가령, 저는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경멸하지 않고, 왈가왈부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존중도 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협지도 무협지 나름입니다. 주인공이 엄청나게 강한 먼치킨으로서 천하제일 미남이어야 하고, 그래서 천하의 미인들을 여럿 거느리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은 극강의 무공으로 시원시원하게 두들겨 패주는 그런 무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저는 그런 사람의 무협 취향을 존중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경멸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경멸을 표현하지는 않겠지요. 그저 모른 척, 왈가왈부하지 않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을 뿐이겠지요.
하지만, 저런 쓰레기 같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자기 아들이라고 해봅시다(자기 아들도 당근 김규항이 말하는 타인에 포함됩니다). 그래도 모른 척 가만 놔둘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걸요? 물론 여기서 저는 취향에 관한 김규향의 교과서적인 일반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예를 들었을 뿐, <디 워>가 그런(그렇게까지) 쓰레기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한편, 비평이라는 것은 이와 다른 차원의 것이구요.
김규항의 글에 공감하고 진중권의 말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의 얘길 들어보면 그래요. 극장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 손 잡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었고, 그런 부모들은 내용 서사구조야 어떻든 아이들과 신나게 즐긴 것 만으로도 만족인 그런 사람들이죠. 그런 분들이 보기엔 극장이란 '온'에서 느껴지는 디빠(개티즌)의 실체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디워 파동을 '쓰잘데기 없는 호들갑'으로 보는 거에요. 개티즌은 말 그대로 방학 때 개념 없이 설치는 '진짜 초딩'이고요. 근데 그거 가지고 백토까지하며 국가적 호들갑을 떠는데, 한 인텔리는 '아동영화'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들먹이며 '그것도 영화냐?' 하는거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선빵론만 아녔다면 김규항의 글은 또 어떤 이들의 심정을 정확히 헤아려준 셈입니다.
즉 '선빵론'만 언급하지 않았으면, 김규항의 글은 헛발질이 아니라는 거죠. 괜히 선빵이란 표현을 써가지고... 그 표현 때문에 사건판단을 잘못한 게 된겁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성이 없는 이상, 서사구도가 엉성하던, 신화의 노래건 모짜르트건 존중 받아야할 것이죠.
부정적 의미에서 '디 빠'란 걍 <디 워>가 재미있었다, 뭐 볼 만 했다..고 말하는 그런 순박한 사람들(특히 아이들)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영화 외적인 논리로 옹호하려 하면서 <디 워>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집단 다굴하듯 하는 사람들입니다.
표적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걍 <디 워>가 재미있었다~, 재미있게 잘 봤다~, 모 돈값은 하드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이유는 없지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취향을 인정하고 심지어 존중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 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디 워>를 나름의 기준과 근거에 따라서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말은 단순한 취향 차원을 넘어섭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문제이지요.
그리고, 만약 '존중받아야 할 취향'이라는 것에 '존중받아야 할 판단'이라는 것이 깔려 있다면, 그건 동어반복입니다. 즉, 존중받아야 할 것이니까 존중받아야 한다..는.
취향이라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과 무관하게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형성되온 버릇이나 성향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거기엔 타고난 기질, 나고 자란 환경, 교육, 또래집단 등과의 상호작용, 미디어의 영향.. 등등이 복합적으로, 카오스적으로 작용해서 형성된 것이겠지요.
저는 취향이라는 것을 그닥 신성시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취향이든 나의 취향이든. 더구나 취향은 변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엔 변하는 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단 본인에게 달린 것이죠. 인위적으로 변하거나 억지로 변하게 할 수도 없는 것이구요. 자라나고 성장하고 나이먹고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면 저절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죠.
하여간 취향으로 인한 행위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전적으로 본인의 문제이지요.. 그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든, 찌질스런 감수성을 갖게 되든, 지적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든, 다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이고, 그로 인한 모든 책임도 본인이 떠안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존중해주고, 존중(난 아직도 '존중'이라는 것이 뭔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해주고, 최소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김규항 글이 남겨주는 건 대충 이거 하나 같아요. 소위 인텔리들이란 작자들이 어려운 용어로 자신을 장식하고 타인의 취향을 멸시하는 것에 대한 비판. 그런 인텔리들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어설프게 채워진 머리를 덜컹거리며 어떻게든 남 앞에서 '있어 보이'고, 고급 지식인으로 존경 받고 싶어 안달난 이들이 그러죠. 그런식의 발언이 남이 자신을 우러러보게끔 하는, 카리스마 부리는 걸로 쉽게 먹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김규항씨는 디워파동에서 그런 면이 보였나 본데, 디워파동이란 사건의 인과관계에서 그건 핵심이라기 보단 주변적 문제였다고 봅니다.
덧) 이번 디워에서 진중권의 게임은 이렇게 봅니다.
1. 백토에서 디워를 신나게 까서 개티즌을 분노하게 만든다.
2. 자기 블로그로 몰고 와서 있는데로 약 올린다.
3. 인터뷰와 지면등을 이용해(일종의 권력이죠) 그들을 비판한다. 개티즌들 입장은, 지들은 중권 블로그에서 찌질대는데 진중권은 신문에서 답장을 내려주니 위압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진중권과 나는 급이 다르구나'하며 한탄할 수밖에.
4. 맞짱토론에 네티즌 대표 5명 끌고나와 차분하고 점잖게 강의한다 .
백토에서 진중권의 모습과 맞장토론에서의 태도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그들을 약올리려고, 하나는 게임을 종료시키려는 의도죠. 맞장토론에서 진중권은 차분하게 강의하듯(용어설명과 이론등) 얘기했고, 처음부터 약올라 나온 네티즌의 모습은 진중권의 태도와 비교되어 싸가지 없어 보인 겁니다. 그냥 말려든 거죠.
저 역시 일부 글깨나 쓰는 사람들에 대해서 종종 문제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또 저에게도, 나디아 님에게도, 아흐리만에게도 그런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저에게, 나디아 님에게, 아흐리만에게 분명 그런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 무정유에 한해서 말하자면, 저는 대중들을 상대로, 그들을 의식해서, 쉽게 읽을 수 있게끔 친절하게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저의 생각을 스스로 촉진하고 정리해보고 때로는 실험해보는, 저 자신을 위한 글쓰기라는 성격이 강하니까요. 최소한 현재론 그렇습니다.
만약 신문 같은 데서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글을 쓰게 되면, 이런 식으로 뭐 좀 아는 척하고, 너무 꼼꼼히 따져들고, 괜히 파고들어가고 하는 글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쓰지도 못할 것이구요. 그런 글을 썼다간 일반 독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고, 금방 짤리게 되겠지요. 그럴 땐 아마 아주 쉽고 재미있게 혹은 감동적으로 쓰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능력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노력은 할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데에 글을 쓰고 있는가, 즉 글을 쓰고 게재하는 곳이 어디인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블로그에서라면, 지조때로 쓰는 겁니다. 이송희일 감독이 자기 블로그에 그런 글을 쓴 것은 아주 정당한 것입니다. 씨네21 같은 영화잡지라면, 영화에 대한 기본기를 좀 갖춘 독자들을 상정해서 쓰게 될 것입니다(블로그보다는 덜 개인적이고 더 순화된 표현을 사용해서). 일간지 같은 곳이라면, 좀 간명하고 가볍게 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글은 어렵건 쉽건, 현학적이건 아니건, 지가 쓰고 싶은 데로 쓰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읽는 사람들이 인내를 보여주던가, 아니면 너그럽게 무시하는 관용을 베풀어주던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글은 쉽게 써야 한다"는 식의 말에 저는 하품을 하게 됩니다. 다만 가능하면 간명하게 쓸 필요는 있겠지요. 간명하다 해서 그 내용이 쉬운 건 결코 아닙니다. 어떤 글이 간명하다는 것과 쉽다는 것은 다소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그리고 백분토론에서의 태도와 맞짱토론에서의 태도가 다른 것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함부로 넘겨짚어선 안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진중권처럼 '이름값'이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하고 일일이 대답해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 사람처럼 몸 하나, 머리 하나, 손 두 개에 똑같이 하루 24시간밖에 없는 진중권이 무슨 수로 그들을 일일이 다 상대해줄 수 있겠어요?
대중(네티즌)들도 한심한 게 그런 이름값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몰려가 따지거나 씹어대거나 빨아주거나 하는데요, 슈퍼스타지만 슈퍼맨은 아닌 진중권이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해주고 대꾸해준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더우기 이 놈이 한 말을 저 놈이 또 하고, 저 놈이 한 말을 그 놈이 또 하고, 거기에다 기본적인 지식, 정보, 기초 논리의 결핍 하며.. 쩝.
진중권 정도의 이름값을 가진 스타라면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중권이 갖고 있는 그런 이름값에 대해서 여기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요, 오히려 진중권에게 몰려가는 대중들이 더 한심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진중권에게 따지고 그를 씹어대는 그 행위 자체가 진중권의 이름값을 더 올려주는 것이거든요. 그들이 진중권의 이름값에 이끌려 몰려갈수록(빨아주기 위해서든 씹기 위해서든) 진중권은 더욱 그들을 무시하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중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되지도 않는 논리로 진중권을 비판햇던 소위 인터넷 논객들, 그들 역시 진중권의 이름값을 올려줄 뿐입니다. 이들은 질시하는 자들로서, 동시에 선망하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진중권의 이름값을 선망하고 질시하는 자들이지요.
마찬가지로 진중권에 대해서도 그 발언 내용이 참이냐 거짓이냐, 옳으냐 그르냐, 그리고 좀더 넓은 맥락에서 그러한 발언 행위가 얼마나 의미있(었)는가..등등이 중요하겠지요. 그런 발언이 이름값을 좀 올려보려는 낚시라는 둥, 무슨 이익을 노린 떡밥이라는 둥, 다른 의도나 동기가 있다는 식의 비난은 쉽게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이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숨은) 동기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분명 없지 않겠지만요.
문제는 '오프'입니다. 잘난척 하고 싶어 안달난 못난 것들 말이죠. 그들은 정말로 타인의 취향을 경멸함으로서 타인을 밟고 올라섭니다. 문제는 이게 먹힌다는 거에요 ㅎㅎ
마지막 진중권의 덧붙임은, 그냥 뭐, 그냥 제가 본 진중권의 모습을 얘기한 것 뿐입니다. 어떤 면에서 진중권 옹호해준 셈이죠. 별로 중요한 거 아니란 무정유님 얘기에 동의합니다.
근데 한가지, 진중권에게 달려든 애들은 결국 진중권의 이름값을 올려준 것과 꼭 같은 작용으로, 진중권의 칼은 결국 디워의 흥행에 박차를 가해준 셈이었죠. 그게 꼭 나쁘다고 할 건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이전이 '개티즌 토양'이란 글을 써서 어떤 카페에 올렸다가 다구리 먹은 적 있습니다. 알고보니 그 카페엔 진중권 싫어하는 이들이 북적이더군요. 그 사람들은 진중권이 '기회다 싶어 꼴려 나간 것 뿐'이라 단정하더군요. 그니까 이름 날리고 돈 벌러 나갔단 거죠. 그때 제가 했던 말이 무정유님과 같습니다. '그 사람의 진정성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걸 아는 사람은 단 한명, 진중권 뿐. 그건 논의의 대상이 아닌, 가쉽거리 뒷담화일 뿐.'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면을 조금씩 갖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따라서 둘 중 하나가 필요하겠지요..
자기과시, 노출증, 과대망상증을 어느 정도 받쳐주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 혹은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하나고(제가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선 거의 유일하게 수군작이라는 분이 나름대로 그런 실력을 갖춘 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가능하면 그런 증상이나 욕망을 억누르고 좀 겸허해질 수 있는 수양을 쌓는 것입니다.
참, 저는 진중권이 <디 워> 흥행에 별로 보탬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제 생각에 어차피 이 정도 흥행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고요, 그저 저는 이번 <디 워> 논쟁을 계기로 사람들이 뭔가를 조금씩 배웠으면 할 뿐입니다. 일종의 학습이지요. 디빠는 디빠대로, 디까는 디까대로, 심지어 심형래 씨로서도 뭔가를 배웠을 것이고 그게 다음 영화에서는 조금이라도 반영이 되어 나타날 수 있겠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말하는 디빠는 단순히 "<디 워>가 재미있었다~" "걍 볼 만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취향 차원을 넘어서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디까도 <디 워>와 디빠를 다 비판하는 사람과 디빠만 비판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저는 <디 워>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제가 겨냥하는 것은 오직 나름대로 근거 있는 비판을 하는 평론가들을 공격하는 '부정적 의미에서의 디빠'들입니다. 이런 디빠들은 결코 소박한 취향 차원의 항변이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2주 전에 사촌이 초딩 딸을 데리고 조조할인으로 <디 워>를 봤는데, 사촌은 졸았다고 하고, 딸은 재미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들에게 진중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디 워>를 놓고 갑론을박한 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들만 그 영화를 본 건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