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Last Exit to Brooklin" 中 "A Love Idea"-
'대중(mass)'은 이름붙일 수 없는 무정형의 다수에 대한 이름붙임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떠 어떠한 사람들이 대중인가'라고 묻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대중일까?
야구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중이다. 가령 그 속에 무슨 대단한 자본가가 있다고 해도 그 순간 그는 관중-대중을 구성하는 익명의 한 신체인 것이다. 이 무정유가 혹 무슨 개뼉다구라 해도 그 야구장에 있다면 역시 그렇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 <태왕사신기> 재방송을 하는 티비 화면 앞에 모인 사람들은 대중이다. 노무현이나 이건희가 혹 <태왕사신기>를 보고 있다면 그들 역시도 그 순간은 시청자 대중을 구성하는 익명의 신체들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단지 '대중'이라는 것을 갖고 말장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걸까? 노! 네버! 결코 그렇지 않다. 이번 <디 워> 소동과 관련해서 소위 평론가들을 비판, 비난했던 사람들이 평론가 vs 대중이라는 상상적 구도 속에서 '대중'의 편에 서는 제스처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대중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시각을 교정해주는 것은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보자. 이송희일 감독에게 2억 원을 투자할 테니 <디 워> 같은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비아냥댔던 어느 자본가(중소기업을 운영한다던) 역시 대중이다. 그가 '자본가(xx기업사장)'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자신의 개별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글(가령 중소기업 사장으로서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글)을 쓴다면 몰라도, 최소한 <디 워>와 관련된 이 경우 그는 그저 대중을 구성하는 익명의 한 신체에 불과하다. 아마도 이송희일 진중권 등 소위 평론가에게 악플을 주렁주렁 달았던 대중(네티즌)들의 신상명세를 까보면, 예상외로 사회적 지위가 좀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예전에 악플러를 추적해봤더니 나이지긋한 교수더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았는가.
만약 그렇다면 평론가 vs 대중이라는 상상적 구도 속에서 '대중'의 편을 드는 것은 웃기는 제스처 아닌가.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들일 뿐이라고?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디 워>를 옹호하는 대중이 어떤 사람들인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뭐 좀 조사라도 해본 것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대중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있지?
대중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때그때 다른 무정형의 다수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 시대의 어떤 현상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하고 싶다.) 그들은 야구장 같은 물리적 공간이나 온라인, '안방극장', '대중사회' 같은 상상적 공간에 모여 있다. 대중이 되는 그 시간에 그들은 대체로 익명의 존재들이다. 익명의 존재로서 그들은 잡다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이름붙일 수 없는 무정형의 다수에 대한 이름붙임'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잡다한 다수가 연령, 성별, 직업, 빈부 및 소득 수준, 지적 수준 등 서로 구별짓는 내용물을 비워내고 평균적인 사회적 존재로 집적되어 있는 것이 대중인 것이다. 대량생산(mass production)-대량소비(mass consumption) 체계와 매스미디어/매스컴 등이 대중이라는 무정형의 다수가 탄생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조건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대중은 민중이 아니다. 대중을 착취당하고 핍박받는 민중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면 완전한 오산이다. 대중을 '척'(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하지 않는 순박한 존재로 가정하는 것도 잘못이다. 소위 '디빠'들이 평론가들을 공격했던 것은 결코 순박한 행위가 아니라, 상당수가 아는 척하는 강한 자기주장들이었다. 한편, <디 워>, 심형래 감독, '디빠'들을 맹렬히 비판하고 비난한 이들도 바로 대중이었다. '디빠'만 대중인가? '디까'도 대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전에 말했던 것을 변주시켜 다시 한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양방향 매체인 인터넷에서 '평론가 vs 대중(네티즌)'의 분리와 대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에 불과하다."
無情遊.

by 무정유 | 2007/09/22 07:09 | 씨부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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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무정유 at 2007/10/04 07:03
대중(일반)이 문제인가? 아니다. 대중 중에서 '어떤' 대중이 문제다. 소위 '디빠'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착각하는 점이 있는데, 이에 대해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두겠다..

1. 문제가 아닌 것 : '즉자적 디빠'

문제는 <디 워>를 보는 일반관객들이 아니다. 걍 <디 워>가 좋다거나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누가 이런 사람들을 경멸하겠는가? 설령 속으론 경멸하는 맘이 전혀 없지 않는 경우라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반복하면, 내가 소위 '디빠'를 비판할 때 표적으로 삼는 인간들은 소위 '즉자적 디빠'라고 부를 수 있는 소박한 사람들이 아니다. 즉 <디 워>를 보는 사람들, 걍 소박하게 <디 워>가 좋았다거나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이런 무정유의 생각에 진중권이나 이송희일 등도 동의 할 거라고 생각한다.

취향은 스스로를 주장해선 안 된다. 걍 이유 없이 좋다는 게 취향이니까. 그래서 취향은 논리도 없고 스스로를 주장하는 말도 없다. 역으로, 스스로를 주장하는 취향은 결코 취향이 아니다. 그것은 취향을 빙자해서 강한 주장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강한 (자기)주장은 이미 하나의 비평이다. 인터넷 등의 쌍방향 매체가 두드러지는 시대에 평론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 평론가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취향이나 호불호를 넘어서는 자기 나름의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Commented by 무정유 at 2007/10/04 07:05
2. 문제가 되는 것 : '대자적 디빠'

소위 '디빠'들 중에서도 정말 문제가 되는 자들은 소박한 '즉자적 디빠'가 아니라 강한 자기 주장을 하는 '대자적 디빠'들이다. 자신의 취향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그러나 제대로 논거를 제시하지 않거나, 빗나간 논거를 제시하거나, 자신의 취향으로 논거를 대신하기도 한다("<디 워>는 이러이러해서 서사에 문제가 있다"는 근거 있는 비평에 대해서, "나는 모 재미만 있더라~ 재미있음 그만 아냐?" 식의 동문서답의 반론을 펴는 사람들).

따라서 이들은 소위 평론가들의 비평 '내용'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결국 그들의 비평 '행위' 자체에 욕설이나 저주를 퍼부을 뿐이다. 역설적인 것은 평론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 자신이 잠재적 평론가임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에 대한 욕설과 저주를 통해 스스로 그들과의 거리를 만들어냄으로써 '평론가 vs 대중(네티즌)'이라는 상상적 구도를 만들어내고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스스로 평론가가 됨으로써 이러한 구도를 뒤엎지 않는 한, 그들이 평론가들을 감정적으로 욕하고 저주할수록 '평론가'라는 자리의 위치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높아지고, 대중은 그만큼 그러한 상상적 구도의 노예가 될 뿐이다.

그런 노예들의 합창을 옹호하는 척하는 소위 인터넷 논객들이라는 자들의 '바보들의 행진'이 있다. 변희재, 공희준, 김석수.......... 이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즉자적 디빠'(말없는 소박한 디빠)와 문제가 되는 '대자적 디빠'(평론가들에 대항해서 강한 자기 주장을 하는 디빠)를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다시 말해 이송희일 진중권 등이 비판한 것은 후자('대자적 디빠')인데 그걸 전자라고 착각함으로써 진중권 등에게 엉뚱한 화살만 날린다. 선망과 질시, 적개심으로 눈먼 화살이다.

황당한 것은, 좌파 중에서는 그래도 제법 알려진 자칭 'B급좌파' 김규항마저 완전히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되뇌며 저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 따르면 진중권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는데, 글쎄,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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