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01일
물뱀이 누군가를 잡아먹는 꿈을 꿨다.
-"Twin Peaks" 中 "Into The Night"-
작은 개울이었나 좁은 수로였나. 우리는 한 명씩 줄지어 헤엄쳐 내려가고 있었다. 초중딩 친구들 같기도 하고 고딩 동창들 같기도 했다. 내가 맨 앞이었다. 갑자기, 무슨 이유인진 기억나지 않지만, 아니 걍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 같은데, 문득 나는 대열을 이탈해서 물 밖으로 기어올라왔다. 바로 그때 뱀 한 마리가 물의 흐름을 빠르게 거슬러 올라왔다. 그리고는 내가 있는 자리를 소리없이 지나쳐갔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풀색이 감도는 물뱀인 듯했는데,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킬 만큼 커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소름이 돋는 듯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살짝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음메, 내가 물 속에서 저 뱀과 마주쳤다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현실보다 꿈속에서 뱀이 더 징그럽고 무섭다. 그런 생각의 이미지가 접혀 있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펼쳐지는 것이다. 원초적 지층 깊이 접혀 있다가 스르르, 펼쳐지는 징그러운, 혹은 아름다운, 그 곡선의, 몸짓, 스, 르르르........
빠르게 내 눈앞을 지나간 뱀이 나 바로 다음으로 헤엄쳐 내려오던 아이에게 덤벼들었다(처음엔 분명히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중, 고교 동창이었던 같은데, 이제는 완전히 가물 하다 못해 깜깜해졌다. 오랫동안 눈을 감고 누워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면 알아낼 수 있을 듯도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때론 망각이 필요하다). 녀석을 친친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머리부터 삼키기 시작했다. 앗! 저! 저! 저! 저! 저! 나는 목구멍에 눌러붙은 묵음을 토해내며 발을 굴렀다. 그러다 물에 뛰어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꿈을 꾸는 자로서 나는 어디까지나 관찰자였다. 그리고 나는 뱀을, 특히 물뱀을 두려워한다. 모르겠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꿈이니까. 뱀도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아이들도 초중딩 친구들이었다 고딩 동창들이었다 하고.
아이들이 뱀에게 달려들어 몸통을 붙잡아 비틀고 꼬집고 했던 것 같다. 어떤 녀석들은 빗자루인지 막대기인지로 뱀을 때리기도 했다. 물에서 헤엄치던 녀석들이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그런 것을 얻어왔냐고? 나도 모르지. 꿈이자나. 나는 그 꿈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관객이었고, 그 꿈이 상연되는 극장일 뿐이었을 거다. 물론 프로이트 할배 식으로 캐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럴 땐 망각이 최고다. 제대로 캘 자신도 없고. 아무튼 동무를 삼킨 뱀은 요동을 치는 듯하더니 싱겁게도 금방 골로 갔을 것이다. 아이들은 동무를 끄집어냈다. 반쯤 혹은 거의 삼켜지다 꺼내진 녀석의 얼굴은 문드러졌고 사지는 흐물거렸다........ 이런 꿈이란 으레 공포와 두려움, 흥분의 클라이맥스에서 깜빡깜빡 켜졌가 꺼졌다 하면서 급격히 장면전환들이 이루어지다가 그 막바지에선 완전히 뒤죽박죽 돼버린다. 그러다 나는 깨어났다. 또렷하게 남는 건 뱀의 S자 몸짓, 그 곡선의 이미지뿐이다.
*
물뱀 꿈이라.. 엇? 그러고 보니 '이무기'에 대한 허접한 글을 썼는데..? 사실 난 가끔 뱀 꿈을 꾼다. 뱀들 중에서도 내 꿈의 주요 단골 출연자는 아나콘다도 아니고 보아뱀도 아니고 살모사나 코브라, 방울뱀도 아니고, 내가 어렸을 때 '돗줄래'라고 불렀던 물뱀이다. 징그럽기로 말하면 집안이나 주변에도 종종 출몰하는 구렁이(그 중에서도 변소 돌담 틈으로 들락거린다는, 귀가 달릴 정도로 오래 살았다는 구렁이, 본 적은 없지만)도 못지 않지만, 아니 구렁이는 정말 징그럽지만, 그러나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다. 혹은 아홉 살 무렵 지네를 잡기 위해 들에 나가 돌들을 뒤집다가 어느 큰 돌 아래 똬리를 틀고 나를 쳐다보던 홍시처럼 불그스름한 이상한 뱀이 나를 시껍하게 만든 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렇게 징그럽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나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은 물뱀이다. 물론 그 이미지이겠지만. 이미지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선 풀색과 검정색이 알록달록한 물뱀을 '돗줄래'라고 불렀다. 기억 속에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돗줄래가 독사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일반적으로 물뱀은 독사가 아니라고 들었다. 하지만 내겐 모든 뱀 중에서 가장 징그럽고 무서운 뱀이다. 이는 아마 물과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 리비도의 바다.
바다가 있는 읍내로 이사온 후 나는 여름만 되면 바닷가에서 살다시피 했다. 다행히 거기엔 킹코브라보다 몇 십 배나 쎄다는 맹독을 가진 바다뱀 같은 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 바다에서 두 번이나 뱀을 봤다. 한번은 뭍에서 제법 떨어진 바다 위를 뱀이 부지런히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물 밖에서 그 뱀을 발견한 아이가 소리쳤고, 수영하던 아이들이 겁에 질려 허겁지겁 소란을 피웠다. 그 뱀은 참으로 날렵한 수영 솜씨로 아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뭍으로 올라와 사라졌다. 마침 그 곳을 지나다 우연히 보게 된 광경인데, 부두에 정박해있던 어느 배에 들어간 구렁이가 배가 출항하자 바다로 뛰어든 것이었을까, 아니면 화물과 함께 배에 실렸다가 빠져 나온 것일까? 그때부터 나는 바다에서 수영을 할 때는 가끔 그런 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후 늘 수영하던 우리 동네 헤엄터에서 내 키의 1.5배쯤은 되는 깊이를 잠수했을 때였다. 뭘 하려고 잠수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거기 어두운 바닥에 희끄무레한 줄 같은 것이 바다의 흔들림을 따라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는 듯했다. 걍 아무 생각 없이 뭔가 하고 들여다보는데, 허걱! 희끄무레한 배를 뒤집고 가라앉아 있는 죽은 뱀이었다. 우-욱. 나는 급히 턴했고 바다를 빠져 나왔다. 아마 며칠 동안은 밥맛이 없었을 것이다. 십 수 년 후 회사에 막 들어간 내가 밤새 술을 마시고는 아침에 술이 덜 깬 상태에서 하숙집 할머니가 끓여준 국을 먹다가 문득 엄청 커다란 바퀴벌레를 발견했을 때, 우-욱, 그때는 이미 대여섯 번은 국을 퍼먹은 상태였는데, 그 일 말고는 그에 필적하는 입맛 떨어지는 사건이 없었을 것이다.
*
물론 실제로 무서운 것은 독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거다. 같은 반 녀석이었는데, 집이 읍에서도 조금은 변두리였다. 어느 날 밤, 수도가 있는 마당가로 가다가 독사를 밟았다고 했다. 요즘과 같은 가을이었을까? 독사는 가을 독사가 가장 무섭다고 한다.
얼굴이 아렴풋하게 기억난다. 비록 아이의 것이라기보다는 조금은 나와 함께 나이 먹은 어른의 것이지만, 참 순박하게 생겼고 성격도 순박했던 녀석이다. 어느 날부터 녀석이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독사에게 물렸고, 시내 병원에 다닌다고 했다. 얼마나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몇 주일은 됐을 거다. 다시 학교에 나타난 녀석은 아마 얼굴에 약간은 부기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얼굴색도 별로였겠지만, 그거야 원래 좀 그런 녀석이었으니. 학교 며칠 잘 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다시 결석하기 시작했다.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어릴 때였으므로 우리는 모두 그러려니 했다. 다시 시내 병원에 다니거나 집에 누워있거나 하겠지 뭐..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죽었다고 했다. 담임이 말해줬는지, 그전에 먼저 같은 동네 사는 같은 반 아이가 알려준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결국은 담임이 공식적으로 말해줬을 테고 애도와 추모의 묵념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내가, 어처구니없는 그의 운명에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려주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도 가끔 그 녀석이, 그 터무니없는 요절이 생각날 뿐. 그럴 때 녀석이 죽은 열한 살 이후의 삶이란 어쩌면 덤으로 주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뿐. 그래서 언젠가 나는 말했던 것이다. 첫울음을 울어댄 이후의 나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고. 왜? 나보다 먼저 태어난 내 누이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땅속에 묻혔기 때문이다. 누이여, 몇 날을 이 지상에서 놀다 갔는가.
이런 식으로 나는 참 많은 삶들을 덤으로 살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핑계일 뿐, 변명일 뿐, 나는 나의 삶을 아주 이기적일 만큼 지조때로 살고 있다. 이무기는커녕 구렁이도 못 되고 그렇다고 독사도 못 되는 이 구차하고 허접한 삶을. 하긴 꿈속에서조차 도래하는 위험에서 미리 혼자만 살짝 빠져나가 물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체하지 않았는가. 정작 잡아먹혀야 할 놈은 나였나 보다. 에이 $*$쓰%^&%#발@&*, 왜 글이 이렇게 끝나게 됐지?^^
無情遊.
# by | 2007/10/01 10:54 | 주접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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