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H에게

YH에게


지난 일요일엔 원래 너와 함께 산에 가기로 했었지. 새벽부터 비가 왔고, 나는 너에게 비가 와서 산에 못 가겠다는 문자를 넣었지. 그런데 10시쯤 그럭저럭 비가 그쳐서 나는 혼자 산으로 향했지.
집을 나선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비가 내렸지. 나는 낯익은 세탁소 처마 밑에서 비를 그었지. 한때 내가 살았던 집 골목 입구 맞은편에 있는 세탁소였지. 앞에 보이는 수퍼가 그때도 있었나, 나는 갸웃하며 기억을 더듬었지. 그래, 그때도 있었다. 나이 많은 노친네 부부가 운영했는데, 가끔 딸들이 봐주곤 했었을 거야. 일찍 문을 닫아버려서 종종 조금 늦은 밤이면 나는 더 아래 수퍼로 맥주 같은 걸 사러가곤 했지…….
다시 나는 아주 가는 비를 맞으며 산으로 향했지. 다행히 비가 멎었고, 나는 우리가 자주 다녔던 코스 중간에서 유턴해서 골짜기로 내려왔지. 산에서 거의 다 내려올 즈음 다시 비가 내렸고, 빗방울이 굵어졌지. 5월 푸르른 잎들이 우산이 되어주긴 했지만, 그래도 잠시 잎이 빽빽이 하늘을 가린 나무 아래서 비를 그었지. 너도 알겠지만, 많은 생각들이 피어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잠시 눈물짓기도 했지. 막연히 이것도 하나의 연기가 아닐까(그렇다면 누구-지젝이라면 대타자라고 했겠지만-를 향한 연기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비가 그쳐 산을 벗어나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을 내려올 때, 다시 비가 내렸지. 이번엔 천둥 번개까지 쳤지. 나는 ‘CCTV 촬영 중’이라는 경고문이 써 붙여진 어느 원룸 빌딩 입구에서 세 번째로 비를 그었지. 또 생각에 잠겼지. 그러면서 죽음의 가능성과 바짝 근접거리에서 대면하는 자는 이렇게 하염없는 생각에 잠기게 되는 법인가보다, 생각했지. 생각에 대한 생각, 메타생각이었지…….
어제는 나뭇잎과 가지 사이로 떨어져 내린 햇빛 조각들을 밟으며 그 골짜기를 내려왔지. 바람이 불어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졌지. 제법 운치는 있었지만, 나를 위해 눈물을 떨구어 주는 거라면 사양하고 싶었지…….
오늘은 우리가 함께 등산할 때 늘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주었던 그 코스로 내려왔지. 거기 고랑 위에 놓인 작은 통나무다리를 지날 때 바람에 아카시아 꽃비가 흩날렸지. 꽃내음도 함께 흩날렸던가. 내가 갸우뚱하는 것은, 오늘은 비가 와서 아카시아 꽃내음이 덜 진했기 때문일테지. 나는 통나무다리 위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 꽃비를 맞았지…….
그렇듯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나는 간절히 바라곤 한다. 이것이 하나의 전기가 되기를. 내 몸도, 정신도, 그 고인 물을 뒤흔드는 운명적인 사건이 되기를. 바람이라기보단 다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이번 일이 없었다면, 오래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육체적으로 방종하고 무절제하면서도 나태한 삶이었으니까. 정신적으로도 나를 뒤흔들 운명적이면서 폭력적인 사건이 필요했을지 모르지. 갈수록 나는 삶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지. 혹은 삶이란 어쩐지 의미있는 무게를 갖지 못한 한편의 부조리한 희비극처럼 생각됐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어떤 운명적 사건이 찾아올 차례였지. 어쩌면 나는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러한 운명적 사건이란 대개 폭력적이지. 나는 긴장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힘의 몸짓이고 더 큰 힘의 몸짓을 연속적으로 펼쳐내기 위한 긴장이다. 비로소 나는 삶의 무게를, 그 힘을 느낀다. (과연, 정말, 그럴까?)
이런 식으로 나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일이 일어난 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보다 오히려 잘된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적인 자기위안의 몸짓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좀 특별한 놈인 것 같다. 하하. 나는 결코 절망하거나 체념하거나 낙담하거나 겁먹지 않으며(사실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달관하지도 않으며, 그저 당연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도 쉽게. 하긴 그 ‘너무도 쉽게’라는 것이 문제긴 하지. 아직 혼이 덜 난 건가.
어쨌든 분명한 것은,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당연하기에 입 아프게 다시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내가 긴장하고, 진지해지고(그러면 삶이란 조금은 의미있는 무게를 갖는 희비극이 될 수도 있겠지. 여전히 부조리하지만), 힘을 증대시키는 것이리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 하는 일도 그런 식이었나보다. 대책 없이, 무턱대고 그 길로 접어들었지만, 그러나 아무런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왜? 뭐 당연히 내가 그렸던 그림대로 될 테니까. 아직까지 요 모양 요 꼴이지만,^^ 하지만 그 과정을 즐겼다. 그게 점점 하나의 관성으로 굳어지고 있었던가. 이제 어떤 전환의 계기가 필요할 때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듯 너도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늦게 시작했지만, 먼저 그 길로 들어섰고 먼저 간 놈들보다 더 뛰어난, 아니 너만의 독창적인, 창조적인 변호사가 되어다오. 그들이 약간의 '고지'를 선취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넌 그들이 갖지 못한 많은 것, 가령 좌절당한 꿈의 잔해, 우회할 수밖에 없었던 욕망, 그럼에도 모습을 바꾸면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그런 것들을 갖고 있다. 그런 네가 그들이 밟은 길을 뒤따라갈 이유가 없다. 너만의 길을, 하나의 새로운 변호사 유형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네게 그간의 너의 좌절의 경험은 오히려 힘의 원천이 될 것이고, 우회는 항상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달고 가는 법이다. 물론 그러한 좌절과 우회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는 똑같은 놈이, 아니 더 못난 놈이 된다)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면.
제 앞가림도 변변치 못한 놈이 하나마나한 말을 씨잘데기없이 주절거린 것 같다. 이 편지의 진짜 수신인은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빙자해서 자신에게 이따위 글이나 끄적이는 게 내 특기인 것 같다. 모든 편지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만 마치겠다.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요즘 많이 고마웠다.

無情遊.

by 무정유 | 2008/05/21 18:55 | 웅얼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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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6/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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