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병에 걸렸다

예전 같으면 내 병에 대해 이렇게 말들을 했으리라.

“죽을병에 걸렸다.”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 있다. 물론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러나 이 병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벌써 많이 나았다. 기분으로는 거의 다 나은 듯하다.

*

(이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천재의 의무>에서 끌어옴.)

일차대전이 일어나자 비트겐슈타인은 자원해서 참전한다. 조국 오스트리아를 위한 애국적 동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 동기가 전혀 없지 않았겠지만, 그렇더라도 그건 아주 부차적인 것이었을 거다. 후방에 배치된 그는 계속해서 전방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후방을 전전하던 비트겐슈타인은 마침내 그의 바람대로 러시아 전선에 있는 전투부대에 배치되었다. 최전방으로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기도했다.

‘나의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임무를 맡게 해주소서.’

최전방에 도착하자 비트겐슈타인은 적의 포화의 목표가 될 가장 위험한 곳인 관측소에 배치해주도록 요청했다. 그는 썼다.

‘……심지어 인생도, 아마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면 생명의 빛이 나에게 올지 모른다.’

관측소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신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 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오로지 죽음만이 인생에 의미를 준다.’

*

비트겐슈타인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지만, 나 역시 죽음과 맞대면하는, 바짝 근접거리에서 맞대면하는 삶의 순간을 꿈꾼 적이 있다. 꿈꿨다기보다는 어쩌면 예감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양면 감정 속에서. 그러한 맞대면은 나의 삶을 흔들어놓을 것이다……이 무기력한 육체를, 이 무능력한 정신을…….

마침내 기회는 온 것일까.

한때 사람들은 사형선고라 생각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죽음과의 근접거리에서의 맞대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병으로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비트겐슈타인이 죽음의 전선에 배치된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어쩐지, 마침내 예감했던 것이 온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나는 흥분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전선에서 살아서 귀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기에, 누군가 동정어린 말을 건네면 짜증났다(“걱정 마. 나 안 죽어!”). 생겨먹은 것이 그래선지는 몰라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쩌란 말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따라서 이 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과의 이 근접거리에서의 맞대면이 이 무력한 삶의 나날을, 그 육체를, 정신을 흔들어놓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제기랄, 죽음의 전선을 통과했음에도 사실상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랬을 때 나는 진짜 죽을 이유를 갖게 되리라.


無情遊.


by 무정유 | 2008/07/19 00:46 | 웅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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