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07일
죽겠다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늦은 밤, 전화를 받았다. 형이 갈 곳으로 먼저 가 있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눔아 나 안 죽어. 내가 뒤따르지 않으면 배신감 느낄거냐?) 살고 싶은 맘이 없다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물론, 풍기지 않는 술냄새도 휴대폰 단말기로 흘러들어왔다. 최진실 씨의 자살 사건도 그를 착잡하게 했을 것이다. 확실히 그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사는 게 어렵다고 도피하듯 자살하는 것을 나는 그닥 동정해주고 싶은 맘이 생기지 않는다. 전화가 끝난 후, 나는 문자를 넣었다. 한번 죽었다 살아났다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했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라고 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 다른 삶을 살라고 했다. 녀석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사나흘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없다. 아직까지는 자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벌써 자살했는데 시신이 발견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어쩌면 술김에, 비관한 마음이 한껏 부풀어올라 그런 전화를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때야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술을 깬 후에는 그럴 용기도 없고 좀 오바했다 싶기도 하고 괜히 쑥쓰러운 마음만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눔아, 그래도 살아 있어라. 아마 다른 삶이어야겠지만. 혹시 정말 저 죽음의 깊이로 너의 신체를 내던졌더라도 나의 동정이나 동조 같은 건 기대하지 마라. 위에서 말했지만, 나는 도피성 자살을 한심하게 보는데다, 너는 이미 나에게 쓰잘데없는 전화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네가 아무런 말도 없이 죽어버렸다면, 나는 동정 나부랑이가 아니라 경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가 최진실 씨의 죽음에서 어떤 경외감마저 느낀 것이 있다면, 그건 그녀가 구질구질한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 그렇다는 거다. (유서라는 것을 쓴다면,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아무 데나 뿌려라~ 정도면 좋을 것 같다.)
無情遊.
# by | 2008/10/07 22:50 | 궁시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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