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빛내다?!

초딩 조카와 뭔 얘기를 나누던 중
나라를 빛내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나라를 빛내는 일?
마치 70년대나 80년대에 들었음직한 말이다.
무엇이 그 아이로 하여금 그런 말을 하게 했을까?

뒤늦게 나는 한마디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나라를 빛내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래, 훌륭하다.
하지만, 밖으로 빛내지 말고 안으로 빛내라.
안으로 빛낸다는 것은, 더러운 곳을 드러내고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나라를 빛내는 일이다.

by 무정유 | 2009/09/05 16:32 | 씨부렁 | 트랙백 | 덧글(0)

죽겠다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늦은 밤, 전화를 받았다. 형이 갈 곳으로 먼저 가 있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눔아 나 안 죽어. 내가 뒤따르지 않으면 배신감 느낄거냐?) 살고 싶은 맘이 없다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물론, 풍기지 않는 술냄새도 휴대폰 단말기로 흘러들어왔다. 최진실 씨의 자살 사건도 그를 착잡하게 했을 것이다. 확실히 그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사는 게 어렵다고 도피하듯 자살하는 것을 나는 그닥 동정해주고 싶은 맘이 생기지 않는다. 전화가 끝난 후, 나는 문자를 넣었다. 한번 죽었다 살아났다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했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라고 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 다른 삶을 살라고 했다. 녀석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사나흘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없다. 아직까지는 자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벌써 자살했는데 시신이 발견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어쩌면 술김에, 비관한 마음이 한껏 부풀어올라 그런 전화를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때야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술을 깬 후에는 그럴 용기도 없고 좀 오바했다 싶기도 하고 괜히 쑥쓰러운 마음만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눔아, 그래도 살아 있어라. 아마 다른 삶이어야겠지만. 혹시 정말 저 죽음의 깊이로 너의 신체를 내던졌더라도 나의 동정이나 동조 같은 건 기대하지 마라. 위에서 말했지만, 나는 도피성 자살을 한심하게 보는데다, 너는 이미 나에게 쓰잘데없는 전화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네가 아무런 말도 없이 죽어버렸다면, 나는 동정 나부랑이가 아니라 경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가 최진실 씨의 죽음에서 어떤 경외감마저 느낀 것이 있다면, 그건 그녀가 구질구질한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 그렇다는 거다. (유서라는 것을 쓴다면,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아무 데나 뿌려라~ 정도면 좋을 것 같다.)
無情遊.

by 무정유 | 2008/10/07 22:50 | 궁시렁 | 트랙백 | 덧글(0)

죽을병에 걸렸다

예전 같으면 내 병에 대해 이렇게 말들을 했으리라.

“죽을병에 걸렸다.”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 있다. 물론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러나 이 병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벌써 많이 나았다. 기분으로는 거의 다 나은 듯하다.

*

(이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천재의 의무>에서 끌어옴.)

일차대전이 일어나자 비트겐슈타인은 자원해서 참전한다. 조국 오스트리아를 위한 애국적 동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 동기가 전혀 없지 않았겠지만, 그렇더라도 그건 아주 부차적인 것이었을 거다. 후방에 배치된 그는 계속해서 전방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후방을 전전하던 비트겐슈타인은 마침내 그의 바람대로 러시아 전선에 있는 전투부대에 배치되었다. 최전방으로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기도했다.

‘나의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임무를 맡게 해주소서.’

최전방에 도착하자 비트겐슈타인은 적의 포화의 목표가 될 가장 위험한 곳인 관측소에 배치해주도록 요청했다. 그는 썼다.

‘……심지어 인생도, 아마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면 생명의 빛이 나에게 올지 모른다.’

관측소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신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 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오로지 죽음만이 인생에 의미를 준다.’

*

비트겐슈타인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지만, 나 역시 죽음과 맞대면하는, 바짝 근접거리에서 맞대면하는 삶의 순간을 꿈꾼 적이 있다. 꿈꿨다기보다는 어쩌면 예감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양면 감정 속에서. 그러한 맞대면은 나의 삶을 흔들어놓을 것이다……이 무기력한 육체를, 이 무능력한 정신을…….

마침내 기회는 온 것일까.

한때 사람들은 사형선고라 생각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죽음과의 근접거리에서의 맞대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병으로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비트겐슈타인이 죽음의 전선에 배치된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어쩐지, 마침내 예감했던 것이 온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나는 흥분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전선에서 살아서 귀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기에, 누군가 동정어린 말을 건네면 짜증났다(“걱정 마. 나 안 죽어!”). 생겨먹은 것이 그래선지는 몰라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쩌란 말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따라서 이 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과의 이 근접거리에서의 맞대면이 이 무력한 삶의 나날을, 그 육체를, 정신을 흔들어놓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제기랄, 죽음의 전선을 통과했음에도 사실상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랬을 때 나는 진짜 죽을 이유를 갖게 되리라.


無情遊.


by 무정유 | 2008/07/19 00:46 | 웅얼 | 트랙백 | 덧글(0)

중단되는 음악?

Chausson,Ernest (1855,1,20- 1899,6,10 불란서)
Poeme Op.25
violin - Ginette Neveu
(음악이 나오지 않는 경우, 다음 주소를 클릭할 것..
(물론 쇼송의 <시곡>은 중단없이 이어집니다..)

나치의 SS보안방첩부(SD) 수장으로서 한때 게슈타포와 국가보안본부까지 지휘하기도 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는 ‘홀로코스트’, 다시 말해 유태인 대학살의 입안자였습니다. 생전에 그는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 젖은 사형집행인’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하이드리히는 힘든 일과를 마친 후에는 항상 자신의 동료들과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들었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현악사중주는 서양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친해지기 어려운 장르가 아닐까 합니다. 처음 제가 현악사중주라는 장르의 음악을 들었을 때(아마 베토벤이었을 겁니다), 폐쇄공포증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좀 갑갑하더군요. 동종의 악기들끼리 하모니를 펼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순수한’ 음악 만들기라는 점에서 현악사중주는 뛰어나지만, 그만큼 폐쇄적인 느낌, 갑갑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이드리히는 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들었을까요? 혹시 밖에서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하고는, 베토벤의 순수한 음악을 들으면서 손에 묻은 피를, 마음속까지 배어있는 피 냄새를 지우려 했던 것일까요? 그렇게 자신의 도살자적인 정신을, 영혼을 정화시키려고 한 것일까요?

글쎄,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겠죠. 어쩌면 하이드리히 자신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르고.. 분명한 것은, 하이드리히의 진실은, 음악을 듣고 정화되는 그 주관적인 느낌이나 내면의 정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회에서 벌이는 객관적인, 그 외면적인 행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수한 아리안 혈통으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독일을 만들겠다는 나치의 망상, 그래서 그러한 순수한 독일로 ‘침입’해 들어오는 유태인들을 박멸하겠다는 그러한 발상은, 어쩐지 네 개의 현악기로만 이루어진 현악사중주의 순수한 음악 만들기와 통하는 점이 있는 듯도 해보입니다. 그렇다고 현악사중주를 나쁘게 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은 현악사중주를 들어도 예전처럼 폐쇄공포증 같은 것도 느끼지 않구요. 좋아하는 곡들도 있습니다. 음악 자체야 뭔 죄가 있겠습니까?


지네트 느뵈가 연주한 쇼송의 <시곡>을 퍼와서 올립니다. 예전에 정경화의 연주로 들은 적이 있는데, 느뵈는 어제 처음 들었습니다. 비행기 사고라는 폭력적인 운명의 느닷없는 개입으로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던 그녀의 바이올린(이제는 세월의 먼지를 느낄 수 있는 모노랄 바이올린 음)을 들으면 그 자체로 가슴이 아려옵니다. 어쩐지 그녀의 삶은 쇼송의 <시곡>처럼 중단 없이 이어지다 아쉽게도 그토록 여운을 남기고 끝났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느뵈의 연주를 듣다보면, 자꾸 끼어드는 기침소리 같은 잡음 외에도 중간에 덜컥 하고 연주가 몇 번 끊깁니다. 원래 그런 건지 변환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생각해봅니다. 그렇습니다. 음악은 중단되기도 해야 합니다. 순수한 음악도 좋지만, 가끔은 그 공간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타자들의 기침소리, 침 넘어가는 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심지어 코 고는 소리조차 감내해야 하며, 때로는 아예 음악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가 피와 살을 가진 타자-사람들과 부대끼기도 해야 합니다. 거기서, 혹은 돌아와서, 중단된 음악은 다시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계속된 음악은, 어쩌면, 이미 다른 음악이겠지요.

날씨가 좋은 것 같습니다. 다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
다 좋은데, 우째 대학 신입생을 위한 음악윤리개론 같다. 때론 음악 속으로 한없이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듯 음악에, 미술에, 문학에, 영화에, 사유에 잡아먹히는 것도 필요하다(그때 생산과 소비의 경계는 사라진다). 아니,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자체 속으로 한없이, 억제할 수 없는 어떤 힘들(가령 반은 자기 안의 힘, 반은 음악의 힘)에 의해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고호가 그랬던 것처럼, 17년간 <혼불>을 쓰면서 자신의 삶의 육신마저 그 제단에 바친 최명희씨가 그랬던 것처럼, 미쳐버리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그 속에 또한 삶이 있고, 세계가 있으며, 타자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같은 것이면서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다. 나는 미쳐버릴 수 없어 불행하다. 무엇을 하든. 미쳐버릴 능력이 없는 나는 약하고 무능력하다.
無情遊.

by 무정유 | 2008/05/24 19:36 | 예술 | 트랙백 | 덧글(0)

YH에게

YH에게


지난 일요일엔 원래 너와 함께 산에 가기로 했었지. 새벽부터 비가 왔고, 나는 너에게 비가 와서 산에 못 가겠다는 문자를 넣었지. 그런데 10시쯤 그럭저럭 비가 그쳐서 나는 혼자 산으로 향했지.
집을 나선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비가 내렸지. 나는 낯익은 세탁소 처마 밑에서 비를 그었지. 한때 내가 살았던 집 골목 입구 맞은편에 있는 세탁소였지. 앞에 보이는 수퍼가 그때도 있었나, 나는 갸웃하며 기억을 더듬었지. 그래, 그때도 있었다. 나이 많은 노친네 부부가 운영했는데, 가끔 딸들이 봐주곤 했었을 거야. 일찍 문을 닫아버려서 종종 조금 늦은 밤이면 나는 더 아래 수퍼로 맥주 같은 걸 사러가곤 했지…….
다시 나는 아주 가는 비를 맞으며 산으로 향했지. 다행히 비가 멎었고, 나는 우리가 자주 다녔던 코스 중간에서 유턴해서 골짜기로 내려왔지. 산에서 거의 다 내려올 즈음 다시 비가 내렸고, 빗방울이 굵어졌지. 5월 푸르른 잎들이 우산이 되어주긴 했지만, 그래도 잠시 잎이 빽빽이 하늘을 가린 나무 아래서 비를 그었지. 너도 알겠지만, 많은 생각들이 피어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잠시 눈물짓기도 했지. 막연히 이것도 하나의 연기가 아닐까(그렇다면 누구-지젝이라면 대타자라고 했겠지만-를 향한 연기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비가 그쳐 산을 벗어나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을 내려올 때, 다시 비가 내렸지. 이번엔 천둥 번개까지 쳤지. 나는 ‘CCTV 촬영 중’이라는 경고문이 써 붙여진 어느 원룸 빌딩 입구에서 세 번째로 비를 그었지. 또 생각에 잠겼지. 그러면서 죽음의 가능성과 바짝 근접거리에서 대면하는 자는 이렇게 하염없는 생각에 잠기게 되는 법인가보다, 생각했지. 생각에 대한 생각, 메타생각이었지…….
어제는 나뭇잎과 가지 사이로 떨어져 내린 햇빛 조각들을 밟으며 그 골짜기를 내려왔지. 바람이 불어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졌지. 제법 운치는 있었지만, 나를 위해 눈물을 떨구어 주는 거라면 사양하고 싶었지…….
오늘은 우리가 함께 등산할 때 늘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주었던 그 코스로 내려왔지. 거기 고랑 위에 놓인 작은 통나무다리를 지날 때 바람에 아카시아 꽃비가 흩날렸지. 꽃내음도 함께 흩날렸던가. 내가 갸우뚱하는 것은, 오늘은 비가 와서 아카시아 꽃내음이 덜 진했기 때문일테지. 나는 통나무다리 위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 꽃비를 맞았지…….
그렇듯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나는 간절히 바라곤 한다. 이것이 하나의 전기가 되기를. 내 몸도, 정신도, 그 고인 물을 뒤흔드는 운명적인 사건이 되기를. 바람이라기보단 다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이번 일이 없었다면, 오래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육체적으로 방종하고 무절제하면서도 나태한 삶이었으니까. 정신적으로도 나를 뒤흔들 운명적이면서 폭력적인 사건이 필요했을지 모르지. 갈수록 나는 삶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지. 혹은 삶이란 어쩐지 의미있는 무게를 갖지 못한 한편의 부조리한 희비극처럼 생각됐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어떤 운명적 사건이 찾아올 차례였지. 어쩌면 나는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러한 운명적 사건이란 대개 폭력적이지. 나는 긴장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힘의 몸짓이고 더 큰 힘의 몸짓을 연속적으로 펼쳐내기 위한 긴장이다. 비로소 나는 삶의 무게를, 그 힘을 느낀다. (과연, 정말, 그럴까?)
이런 식으로 나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일이 일어난 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보다 오히려 잘된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적인 자기위안의 몸짓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좀 특별한 놈인 것 같다. 하하. 나는 결코 절망하거나 체념하거나 낙담하거나 겁먹지 않으며(사실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달관하지도 않으며, 그저 당연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도 쉽게. 하긴 그 ‘너무도 쉽게’라는 것이 문제긴 하지. 아직 혼이 덜 난 건가.
어쨌든 분명한 것은,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당연하기에 입 아프게 다시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내가 긴장하고, 진지해지고(그러면 삶이란 조금은 의미있는 무게를 갖는 희비극이 될 수도 있겠지. 여전히 부조리하지만), 힘을 증대시키는 것이리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 하는 일도 그런 식이었나보다. 대책 없이, 무턱대고 그 길로 접어들었지만, 그러나 아무런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왜? 뭐 당연히 내가 그렸던 그림대로 될 테니까. 아직까지 요 모양 요 꼴이지만,^^ 하지만 그 과정을 즐겼다. 그게 점점 하나의 관성으로 굳어지고 있었던가. 이제 어떤 전환의 계기가 필요할 때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듯 너도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늦게 시작했지만, 먼저 그 길로 들어섰고 먼저 간 놈들보다 더 뛰어난, 아니 너만의 독창적인, 창조적인 변호사가 되어다오. 그들이 약간의 '고지'를 선취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넌 그들이 갖지 못한 많은 것, 가령 좌절당한 꿈의 잔해, 우회할 수밖에 없었던 욕망, 그럼에도 모습을 바꾸면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그런 것들을 갖고 있다. 그런 네가 그들이 밟은 길을 뒤따라갈 이유가 없다. 너만의 길을, 하나의 새로운 변호사 유형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네게 그간의 너의 좌절의 경험은 오히려 힘의 원천이 될 것이고, 우회는 항상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달고 가는 법이다. 물론 그러한 좌절과 우회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는 똑같은 놈이, 아니 더 못난 놈이 된다)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면.
제 앞가림도 변변치 못한 놈이 하나마나한 말을 씨잘데기없이 주절거린 것 같다. 이 편지의 진짜 수신인은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빙자해서 자신에게 이따위 글이나 끄적이는 게 내 특기인 것 같다. 모든 편지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만 마치겠다.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요즘 많이 고마웠다.

無情遊.

by 무정유 | 2008/05/21 18:55 | 웅얼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